한국의 복지예산은 다른 국가에 비해 적다. 그러나 이마저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복지시스템의 정상적 가동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에 따라 시리즈를 시작했다.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쏠림현상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이유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다루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전체 복지지출의 10%를 겨우 넘는 빈곤층 예산이 기초수급자에만 집중됨으로써 제도의 효율성을 갉아 먹고 있다. 과도한 혜택으로 기초수급자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혜택을 박탈당할까봐 자식의 취업을 막는 일도 벌어진다.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빈곤층이 더 힘들게 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을 탓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이런 문제를 만들어낸 시스템을 손대지 않는 것이 더 큰 도덕적 해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최씨의 사례는 기초생활보호제도의 부작용을 보여준다. 기초수급자에게 제공하는 복지가 근로의욕을 진작시키기는커녕 제도의 우산 아래 안주하려는 욕구를 키워주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쐐기형 혜택의 부작용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진행하는 298개 복지사업을 분석했다. 그 결과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4인가족 기준 149만원)의 100% 미만인 기초수급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92개였다. 수급자가 되면 거의 모든 혜택을 받고, 탈락하면 다 사라지는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형 복지다. 전문가들은 이를 ‘쐐기형(notch) 혜택’이라고도 부른다. 한번 박아놓으면 잘 빠지지 않는 쐐기처럼 수급자가 되면 이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생계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등이 대표적이다.

기초수급자가 받는 복지혜택은 정부 차원의 공식적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들은 신입생을 선발할 때 저소득층 특별전형을 진행한다. 대부분 기초수급자의 몫이다. 지난해에는 부부가 재산을 남편 쪽으로 몰아넣은 뒤 위장이혼을 하고 아내가 기초수급자 자격을 받은 것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자식을 부인 주민등록에 올린 후 저소득층 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시킨 것이다. 이들은 대학이 정밀한 재산조사를 할 수 없는 현실을 악용했다.

사회에 진출할 때도 마찬가지다. 삼성그룹은 올해 대입 공채에서 신입사원의 5%를 저소득층에서 뽑았다. 삼성 관계자는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한 전형이었지만 합격자 대부분은 기초수급자였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들의 저소득층 선발 특례도 대부분 기초수급자에 집중돼 있다. 각종 사회단체와 기업이 실시하는 연말 불우이웃 돕기 등 각종 빈곤층 지원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혜택에, 보이지 않는 사회 전반의 지원이 더해져 기초수급자란 빈곤의 함정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692만원 vs 190만원

기초수급자에 집중된 예산은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광범위한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정된 예산을 기초수급자에게 몰아주다보니 힘겹게 극빈층을 탈출한 취약계층은 혜택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0년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만 400만명에 이르렀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인 사람이 67만명, 소득은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지만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지원을 못 받는 사람은 103만명에 각각 달했다. 또 소득은 없지만 집이나 자동차가 있어 수급자에서 제외된 빈곤층도 240만명이었다. 때문에 현실에선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 간 소득역전 현상도 발생한다. 일하지 않는 기초수급자의 가처분소득이 일하는 차상위계층보다 많은 경우다. 2010년 기준으로 기초수급자에 배정된 가구당 복지예산은 연 692만원에 달했다. 반면 기초수급자가 아닌 빈곤층에 대한 지원금은 190만원에 그쳤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연구실장은 “기초수급자가 받는 지원이 너무 많아 다른 계층보다 가처분소득이 더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나타난다”며 “이는 저소득층 내부에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복지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빈곤탈출률 급속 하락

기초수급자에서 벗어나는 순간 부담은 급증한다. 우선 취업을 하면 면제받던 주민세와 사회보험료를 내야 한다. 생계급여 등 각종 급여를 못 받거나 줄어들고, 각종 소득공제와 세금감면 혜택도 사라진다.

대학교의 기초생활수급자 장학금, 공공임대주택 입주 우선권, 전세자금대출 이자감면 등 혜택도 없어지거나 줄어든다. 생활 전반에 걸쳐 엄청난 비용상승이 일어난다. 경기도의 한 자활센터 담당자는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사람들도 각종 혜택이 박탈되는 것을 우려해 취업을 하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빈곤탈출률 하락이라는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전년도 빈곤층 가운데 금년도 빈곤탈출 가구를 의미하는 도시근로자 빈곤탈출률은 1999년 49%에 달했다. 하지만 2008년에는 32%로 추락했다. 뿐만 아니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빈곤개선효과도 사회보험이나 다른 보조금에 비해 훨씬 적다는 정부의 연구 결과도 있다. 빈곤의 함정을 만들고 있는 기초생활보호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확산되는 이유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